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7천인 대회 (문단 편집) === 류사오치의 연설 === 1월 27일, 류사오치는 7천인 대회 참석자들 앞에서 정치국 상무위원과 논의한 요지에 따라 구두보고를 했다. 이 구두보고는 3시간 가량 소요되었다. 그는 먼저 대약진 후 공업, 농업이 예상했던 것처럼 빨리 발전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식량도 부족하고 식용유와 돼지고기 등 부식물도 부족하며 천도 부족하다고 인정했다. 앞서 마오쩌둥이 검토한 서면 원고에는 대약진 운동의 폐단이 발생한 원인을 자세히 논하지 않고 3년 동안의 자연재해와 작업 중 잘못 등 두가지 원인만 나열했다. 그러나 류사오치는 구두 보고에서 각지의 상황이 다르다며 천재와 인재를 구분했다. 또한 서면 보고에서는 대약진의 12개 결함과 4개의 오류가 기록되었지만, 류사오치는 구두보고에서 결점과 잘못이 더 많을 수 있음을 인정했고 마오쩌둥이 과거에 즐겨 사용했던 "9개의 손가락(성과)과 한 개의 손가락(실책)"이란 용어는 현실과 맞지 않다며 다음과 같이 발언했다. >"후난성의 농민들은 곤경의 30%는 천재 탓이고 70%는 인재 탓이라고 믿는다. (중략) 전체적으로 주된것은 우리가 성공한 것들이었고 결점과 오류는 부차적이다. 그것들은 부차적 지위를 차지한다. 비록 지역마다 다르긴 하지만 대체적으로 업적 대 실패의 비율이 7대 3이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아홉 손가락 대 한 손가락 비유가 모든 지역에 적용되지는 않는다. 잘못이 손가락 하나이고 성공이 손가락 아홉개인 지역은 소수에 불과하다." 한편 류사오치는 농민들이 아직까지도 배불리 먹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간부와 군대, 노동자가 배물리 먹지 못하면 문제가 커지니 간부는 어떻게 해서든 농민들을 설득하여 농민의 '정치적 각오'를 높여 국가에 식량을 공급할 것을 요구했다. 다만 농민을 배려하기 위해 외국에서 80억근의 식량을 수입하기로 했고 양곡 징수 임무를 820억근에서 800억근으로 낮추겠다고 밝혔다. 세간에는 류사오치의 이같은 연설이 마오쩌둥이 예상하지 못했던 것이었고 마오쩌둥은 류사오치가 자신을 비판하는 것에 격노했다고 알려졌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았다. 마오쩌둥은 앞서 정치국 상무위원들과 함께 류사오치로부터 구두 발표할 내용에 대해 전해들었고 이에 대해 별다른 의견을 제시하지 않았다. 또한 그는 류사오치가 3시간 동안 연설하는 동안 얌전히 앉아있으면서 별다른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다만 "아홉 손가락 대 한 손가락 비유가 소수에만 적용된다."는 류사오치의 발언에 심기가 불편해진 그는 다음과 같이 반박했다. >"전혀 소수가 아니다. 예를 들어 허베이성에서는 20% 지역에서만 생산이 감소했고 장쑤성의 경우 전체 지역 가운데 30%가 매년 생산량이 늘었다." 하지만 류사오치가 "대체적으로 볼 때 실패가 손가락 한 개에 그친다고 말할 수는 없고 그보다는 손가락 세개에 해당하며, 신양 지역이나 텐수이 지역처럼 일부 지역들은 그보다 더 많다."라고 반박하자, 마오쩌둥은 입을 굳게 다물었다. 마오쩌둥은 회의 후 '중공중앙 확대공작회의 류사오치 동지의 보고에 관한 결의'를 심의할 때 별다른 이견을 제시하지 않았고, 확대중앙공작회의는 다음과 같은 결의를 발표했다. >"확대중앙공작회의는 류사오치 동지를 대표하여 중앙이 이번 회의에서 한 보고와 마오쩌둥 동지와 중앙상위 몇 명의 연설을 충분히 토론하였다. 이번 회의에 참가한 모든 동지들은 이 보고서의 국제, 국내 정세에 대한 분석에 전적으로 동의하며, 지난 4년간의 작업에서의 위대한 성과와 주요 약점, 잘못된 예측, 4년간의 기본 경험의 교훈을 요약한 보고서가 제시한 전 당의 주요 과제와 향후 투쟁 목표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류사오치의 3시간에 걸친 구두 보고는 마오쩌둥을 불쾌하게 만드는 부분을 다뤘지만 마오쩌둥의 위신을 지키는 데에도 매우 주의를 기울였다. 류사오치는 구두보고에서 전반적인 당 노선을 옹호해 마오쩌둥의 심기를 누그러뜨리려고 애썼다. >"우리가 몇년 동안 범한 잘못된 성질은 서면보고에서 이미 언급되었다. 우리가 범한 것은 노선 상의 잘못이 아니라 총노선을 집행하는 과정에서 우리가 일정부분의 실책을 범했다. (중략) 다시 몇년 동안의 업무에서 발생한 결점과 잘못에 대해, 우리는 서면으로 책임을 져야 한다. 이른바 중앙 책임이라는 것은 중앙 각 부서를 포함하고 있으며 국무원과 국무원 산하의 각 부서를 포함한다." 하지만 마오쩌둥은 내심 류사오치를 괘씸하게 여겼다. 그는 주치의 리쯔수이에게 속내를 털어놨다. >"인재 대 천재를 운운하더군. 이런 종류의 발언 자체가 참사야." 그러나 그는 형세가 자신에게 불리하다는 걸 잘 알고 있어서 자신의 속내를 감췄다. 대신 그는 서면보고와 구두보고의 두 가지 서로 다른 보고서가 서로 모순되는 점을 일치시킬 수 있기를 바라며, 서면보고는 광명을 강조해 사기를 진작하고 구두보고는 암흑을 솔직하게 밝혀 각급 간부들을 굴복시킬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후 마오쩌둥과 류사오치의 사이는 점점 더 멀어지게 되지만, 당시 참석자들은 류사오치와 마오쩌둥이 서로 충돌할 가능성을 의식하지 못했고 당내 상층부가 단합되어 있다고 생각했다. 양상쿤은 자신의 일기에 "류사오치 동지의 보고에 모두들 만족했으며 회의 개최에 특히 만족했다." 라고 기록했다. 한편, 장원톈은 1959년 루산회의에서 펑더화이 우경주의 파벌로 몰려 자아비판 후 실각했지만, 명목상 7천인 대회 상임 이사국의 멤버였기에 기밀 총회에 참여하지는 못해도 개인적으로 류사오치의 서면 및 구두보고에 귀를 기울일 수 있었다. 그는 마오쩌둥에게 다음과 같은 내용의 편지를 보냈다. >"류사오치 동지의 보고와 이 보고서에 대한 결의안을 완전히 지지하고 마오 의장의 지시와 중앙위원회의 여러 동지들의 연설을 지지합니다. 앞으로 이들이 실제 업무에 구현되도록 보장하겠습니다." 마오쩌둥은 장원톈으로부터 편지를 받은 뒤 류사오치와 덩샤오핑을 불러 편지를 보여주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장원톈 동지가 편지를 보내왔다. 천보다 등 서기처의 동지들에게 이 편지를 연구하게 하라. 장원텐은 동요분자이며 실수를 반복하고 있다. 그가 말한 것이 믿을 만한 지의 여부를 연구할 가치가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